외식 브랜딩/솔로몬의 식당: 1개의 글

[대학로/혜화역] 오!감자탕- 평범한 감자탕의 비범한 변신

Posted by jinoaction
2015. 11. 19. 09:00 외식 브랜딩/솔로몬의 식당

감자탕은 스테디셀러 외식창업 아이템이다. 맛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다. 식사로도 괜찮고 술로도 괜찮다. 비쥬얼도 괜찮고 만족감도 괜찮다. 소박한 한그릇도 괜찮고, 푸짐한 탕으로도 괜찮다. 낮에도 괜찮고, 밤에도 괜찮다. 심지어 새벽까지 괜찮다. 그야말로 "괜찮아, 감자탕이야" 다.


그런데, 매콤하고 얼큰한 국물맛이 아이 입맛엔 별로 일 수 있다. 가족단위 고객을 위해 돈까스, 볶음밥 등 아이 취향에 맞는 다양한 사이드 메뉴를 내놓는다. 거기에 편하게 드시라고, 키즈존을 마련해놓는 경우도 늘어났다. 전반적으로 대형 감자탕 매장들이 많아졌고, 다수의 프랜차이즈 업체들 간 경쟁도 심해졌다.(원당감자탕, 이바돔, 남다른 감자탕, 참이맛 감자탕 등등...) 개인 창업은 쉽사리 찾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춘추감자탕 시대.


프랜차이즈가 난립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평이해졌다. 인테리어나 분위기도 획일화되고, 감자탕 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이미지를 닮아갔다. 젊은 커플들, 여성 고객들이 이용하기엔, 다소 OLD한 게 사실이다. 맛과 모객력를 갖춘 아이템이지만, 상권과 규모 및 주요 유동인구에 따라 한계도 분명한게 감자탕이다. 이 한계는 여러 한식아이템들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잡지를 보다가, 흥미로운 감자탕을 발견했다. 이름하여 '밀라노 감자탕'. 토마토소스로 국물을 낸 퓨전감자탕이다. 사실 이런류의 이색 조합을 즐기지는 않는다. 대체로 본질에서 벗어나, 자극적일 때가 많고 두번 가게되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름의 개성을 만드려고 노력하는데, 안타깝게도 매니아(?)적인 음식이 되어, 스스로 고객층을 좁히는 경우가 다수다. 정확히 말하면 오래 가겠다는 개발자의 신념이 부족하다. 인터넷으로 조금 검색해보니, 대학로의 명물로 자리잡은 '핏제리아 오'의 박인규 셰프란 분이 오랜 시간 메뉴를 연구해, 런칭한 세컨드 브랜드란다. 아직 '핏제리아 오'도 가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들락날락이 일상인 이 살벌 대학로에서 브랜드를 성공시키고, 세컨드 브랜드는 전혀 다른 감자탕이라니... 뭔가 흥미로워, 주말에 찾았다.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화이트를 기본으로 한 심플한 입구와 간판 이미지. 적당히 무거운 느낌의 캘리그라피로 감자탕 본연의 이미지를 가져가되, 식재료 일러스트로 깔끔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더했다. 사각의 간판을 살짝 틀어 마름모꼴로 놓아 눈에 더 잘띄게 한 것도 굿 센스. 답답한 한복을 벗어 던진듯한 첫 인상이 좋다.



입구에는 그린 카펫과 나무 조경으로 풋풋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골목이 사람많이 지나다니고, 식당 간판으로 꽤나 어지러운 공간인데, 특별한 공간 연출로 들어가기 전부터 기대감을 준다. 이런건 알면서도 쉽지 않은 선택.



입간판도 고객 입장에서의 중요도 순으로 메인과 점심메뉴로 심플하게. 이 입간판의 디자인은 '핏제리아 오'와 동일하다. 브랜드를 아는 사람들의 디테일! 



입구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게 되는 슬로건. '만날 수 없던 맛을 만나다' 

컨셉에 딱 부합할뿐만 아니라, 라임도 좋다. 뭐든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다. 



지하 입구 방향으로 살짝 꺾으면 더 멋진게 있다. 어떻게 그 만날 수 없던 맛을 만들어냈는지의 브랜드 스토리. 만남, 기억, 시도, 재현을 키워드로 새로운 감자탕의 이야기를 호소력있게 풀어내고 있다. 밀라노의 시골마을에서 처음 만난 맛, 3년 6개월의 레시피 개발. 진심이겠지... 사실 난 이때부터 벌써 맛있었다.



내부 역시 깔끔한 화이트 컬러를 배경으로, 먹음직스런 메뉴 사진들을 꽉 채웠다. 맛에 대한 기대를 또 한번 증폭시킨다. 빛이 투과되어 조명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천장의 구조물이 인상적이었다. 공간의 집중도를 쭉 끌어올리는 느낌. 식당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한 구조물이라 참고할만했다. 식사시간보다 다소 이른 5시 정도였는데, 사람들로 북적였다. 역시.  



갤러리형의 메뉴 사진으로 공간을 꽉 채웠다.감자, 통뼈, 무청시래기, 소스 감자탕의 주요 식재료 4가지도 강조!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창업자가 이런 것들을 구성하는게 결코 쉽지 않다. 퀄리티 높은 이미지에서 메뉴와 식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메뉴 & 맛 


반찬이 나오자마자 아내가 하는 말. '정갈하다' 말그대로 깔끔한 담음새가 신선해보였다. 식감을 고려해 돌려썰기한 오이피클도 신경 쓴 티가 난다. 무엇보다 토마토 김치로 시작부터 새로움을 준다. 새콤달콤한 소스에 무친 부추와 방울토마토의 의외의 조합에 자꾸 손이 가게되는 별미. 추가하면 2,000원이다. 연구하고 개발한 메뉴니, 받을만 하다. 



드디어 등장한 '밀라노 감자탕' 살짝 데쳐 옷을 벗은 빨간 토마토, 풍성한 초록 루꼴라, 이제 막 냉장고를 벗어난 그레이 쭈꾸미, 국물의 제왕 검은 홍합, 밀라노 감성 물씬 풍기는 노란 파르펠레(나비모양 파스타)와 빠질 수 없는 감자, 여기에 끓기 시작하면 직접 와서 갈아주는 파르메산 치즈 가루까지. 감자탕 본연의 푸짐함에 색감을 더해, 보는 순간 입맛을 돋운다. 이런 건 배워야 한다. 




한참 먹다 보면, 귀여운 컵에 든 우유와 생크림 믹스소스를 직접 부어주신다.(바라보느라 미처 찍지 못한 크림--;) 빨간 토마토 소스에 더해진 크림소스로 로제 소스화, 약간 달짝지근하게 부드러워진 소스로 다시 먹기 시작한다. 이런 위트넘치는 아이디어를 봤나.  



감자탕의 피날레는 볶음밥! 여기엔 볶음밥은 없다. 로제소스에 여유있게 풀어주는 리조또만이 있을 뿐. 세번씩이나 테이블로 찾아 온 스텝은 토마토 베이스로 추정되는 특제소스에 버터와 모짜렐라 치즈, 파슬리를 더해 특별한 리조또를 준비해준다. 배가 불러도 가보고 싶은, SNS에 도배되는 특별한 마무리



메뉴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둘이 먹기에 탕모든 메뉴는 포장이 가능하다. 포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서비스 & 디테일


셀프바가 있었는데, 사전 안내가 없어 스텝에게 반찬 추가 요청을 했다. 거절하기 어려웠는지, 친절하게 응대는 해주셨는데 미리 안내해주면, 불필요한 이동을 줄일 수 있겠다. 


메인 메뉴를 처음 내어오면서, 스텝이 안내하는 밀라노 감자탕의 3단계 맛(토마토-로제-리조또)에 대한 설명은 기대감을 높이고, 메뉴 추가의 가능성도 높인다. 객단가도 높아지겠지. 그런데 이런 사전 설명이 자칫 소극적이고 어색하면, 안하니만 못하다. 제대로 된 교육과 자신감이 필요한 법인데, 좋았다. 시작하지 얼마 안되서 그랬을까. 스텝과 요리사분들의 활기찬 모습도 굿!


끓고 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모래시계. 사우나에서만 만날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도 귀여운 디테일! 



다 먹고나서 아내의 한마디 '올해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거 같아' 

아내의 미각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건 확실히 만족했다는 점이다. 너무 칭찬만 한걸까? 그런데 뭔가 제대로 오래갈 것 같은 집의 특징은 장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점이다. 감자탕의 대중성에 트렌디한 퓨전스타일과 서비스가 더해져, 오래 갈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고, 그 결과가 맞아떨어졌다는 게 눈에 보이는 듯해, 놀라웠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함께하는 사람이 늘수록 괜찮은 집. 장사를 배우고 싶다면 꼭 들러봐야 할 감자탕 집이었다.   



<오!감자탕>

02) 743-0055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8가길 56 동숭빌딩

오전 11시-(다음날)오전6시(연중무휴) 

밀라노감자탕(돼지뼈)2만8000원, (소뼈)3만3000원, 생생감자전 6000원, 리조또(밀라노감자탕)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