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 칼럼/출발 비디오먹방: 2개의 글

<카모메 식당>(오기가미 나오코, 2007) - 작은 식당이 아름답다.

Posted by jinoaction
2016. 6. 22. 09:00 음식문화 칼럼/출발 비디오먹방


사치에가 물었다. '만약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당신은 뭘하겠어요?' 미도리가 답했다. '글쎄, 제일 먼저 아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요.' 아내에게 똑같이 물었다.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어야지' 당신에게 묻는다. 여간해선, 다른 답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다른 것에 앞서는 기쁨이다. 세상 마지막에 떠오를 위로다.


카모메 식당은 이처럼 위안의 공간이다. 몇번이나 힐끔대던 아줌마들이 호기심에 들르는 곳. 공항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여행객이 잠시 머무는 곳. 남편과의 이별에 세상이 싫어진 아내가 화푸는 곳. 딱히 이 곳이어야 하는 이유가 없어도 되는 곳. 하지만 따뜻한 음식이 있고 반겨주는 주인이 있다. 주인인 사치에가 그리는 공간도 바로 그러하다. 격식을 차리는게 아니라 지나던 사람들이 부담없이 들어와 먹는 동네 식당.      



핀란드의 평온한 이미지와 겹쳐, 이 동네 식당은 더욱 아늑해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아늑함과 공존하는 뒷모습에 더 끌린다. 개업 후 제법 오래 동안 사람들이 찾지 않아, 쓸쓸한 오후 시간. 청어, 순록고기 등 현지 식재료를 반영해보지만 맛이 별로인 오니기리 신메뉴. 손님이 있건 없건, 차분히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맞기 위한 요가 습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치에의 식당 철학. 정신없이 분주한 주방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식사 시간. 그저 낭만적일 것만 같은 일상에서 얽히고 섥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요즘의 맛집 문화 속에는 그 이야기가 사라진지 오래다. 식당은 이제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버려진다. 사람들의 소문이 또다른 사람들을 불러모으지만, 아주 잠시다. 식당이 가진 철학, 평범한 일상, 주인과의 교감이 있는 동네식당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유야 많다. 식당을 들었다 놨다하기에 좋은 SNS, 오래된 동네 식당이 살 곳을 찾아 헤매는 임대료 현실. 커져가는 음식에 대한 관심만큼, 성숙하지 못한 우리네 음식문화.


그러고보면, 영화의 주인공은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가 아니었다. 카모메 식당을 다시 찾고 즐기는 이들이었다. 감독은 작은 식당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작은 일상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사는 생각들에 대해 차분히 풀어냈다. 드넓은 숲을 가지고 있어, 여유로운 핀란드의 배경이 그 생각의 깊이를 더한 듯 하다. 또한 단정함 속에서도 나름의 화려함을 드러내는 카모메 식당 곳곳의 식기와 배우의 의상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반박자 템포를 늦추고 싶을 때, 이 영화는 분명 휴식이 될만하다. 

   




"코피루왁, 누군가 당신만을 위해 끓여주면 더욱 맛이 진하죠"



  

<앙:단팥 인생 이야기>(가와세 나오미, 2015) - 장인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자세

Posted by jinoaction
2015. 11. 10. 09:00 음식문화 칼럼/출발 비디오먹방

요리영화하면 어느정도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다. 실력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조리에 몰입하는 주인공, 화려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배고파지게 만드는 음식의 향연, 재미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대략 유쾌한 결말. 솔직히 '앙'을 보기 전, 이 영화도 그러겠거니 싶었다. 매일 출근길에 지나쳤던, 씨네큐브에 걸린 영화 포스터는 약간은 지루해보였다. 그래도 그 포스터가 제법 오래 걸려있었다는 점과 최근 들어, 흥미를 갖게된 일본영화 특유의 차분함에 호기심이 생겼다. 결론적으로, 색다른 장면과 묵직한 감동, 그리고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였다.

 

센타로는 사정으로 진 빚을 갚기위해 도라야끼 매장 '도라하루'를 맡아서 운영한다. 자발적으로 열게 된 매장이 아니었기에, 수동적이다. 일어나서 문을 열고, 빵을 구워 팥을 채우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도라야끼를 건네고, 다시 문을 닫는 반복의 일상이 그저 무기력하다. 단골인 여학생들의 수다도 그에게는 소음일 뿐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가 매일 도라야끼에 채우는 공장 생산 팥처럼 그의 삶은 생기도 애착도 없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알바생 도쿠에 할머니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 50년 간 팥을 쑤어온 그녀에게 팥은 특별하다. 정성을 담아 만든 그녀의 팥소가 담긴 도리야끼의 특별한 맛을 사람들은 대번에 알아차린다. 한적했던 가게 앞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선 사람들로 북적인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센타로도 그녀의 삶에 대한 성실함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인다. 단골 손님인 의기소침한 여학생 와카나도 도쿠에로 인해 에너지를 얻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담아 매진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소를 짓는다.  


녀는 사실 어렸을 적 병을 앓았던 나환자였다.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도라하루는 다시 쓸쓸해진다. 환자촌 울타리에 갇혀 평생을 살아왔던 그녀에게 세상과의 소중한 통로였던 팥 만들기 일은 오래시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편견은 영화에서처럼 강하고 날카롭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다른편으로 돌려세우고 배척한다. 센타로의 말처럼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안한 감정에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반성했다.   

 


도쿠에 역의 키키 키린의 연기는 실제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일본의 국민 여배우로,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대체 불가의 존재감을 보여왔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주어진 작은 기회에 한없이 감사하는 모습에서 뭉클했고, 눈물이 났다. 와카나 역의 우치다 카라는 실제 키키 키린의 손녀딸이다.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출연해 만드는 영화라니... 영화 같은 일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연스러웠을까. 우리 할머니 생각이 계속 겹칠 정도였다. 


도쿠에가 팥을 쑤는 일련의 과정은 외식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될만 하다. 동이 트기전 부터 어김없이 하루를 준비하는 성실함. 마음으로 극진하게 식재료를 대하는 자세, 조리에 있어, 한치의 방심이나 오차도 줄이려하는 집중과 세심함, 먹는 사람의 기쁨이 온전히 자신의 기쁨이 되는 진정성까지. 전혀 화려하진 않지만, 정확히 몸에 밴 그녀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장인의 기품을 배울 수 있다. 오랜시간의 좋은 습관이 배어있는 맛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만든 팥소의 맛이 궁금해질 정도로, 맛있는 영화였다.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 왔을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상상하는 일이지요."